“이 세상에 꼭 필요한 건 착한 사람입니다” 국민 배우 故 안성기, 마지막까지 사람으로 남긴 장면

한국 영화사의 한 시대를 상징했던 안성기가 동료와 가족의 눈물 속에 영면했습니다.
스크린 위에서는 언제나 담담했고, 현실에서는 끝까지 조용했던 배우의 마지막 길은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고인의 영결식은 9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파밀리아 채플에서 엄수됐습니다.
유족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인과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영화를 대표했던 배우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배웅했습니다.

영결식은 약력 보고를 시작으로 고인의 대표작들을 되짚는 추모 영상 상영으로 이어졌습니다.
〈고래사냥〉, 〈하얀전쟁〉, 〈무사〉 등 시대를 관통한 작품들이 스크린에 오르자, 장내에는 조용한 흐느낌이 번졌습니다.

배우 정우성은 조사에서 2000년 영화 〈무사〉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고인을 회상했습니다.
그는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와, 자신을 앞세우지 않으려는 절제가 몸에 밴 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무색무취로 자신을 지키려 했던 선배님은 사실 누구보다 향기롭고 또렷한 색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우성은 특히 “아역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배우의 길을 놓지 않으면서, 한국 영화의 정신을 이어가려 애쓰셨다”고 말하며 끝내 목이 메었습니다.
그는 “가치가 쉽게 잊히는 시대에, 안성기라는 이름으로 가치의 중요성을 말해주신 분이었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고인과 오랜 시간 작품을 함께했던 장례위원장 배창호 감독 역시 추도사에 나섰습니다.
배 감독은 1980년 봄 광화문에서 처음 고인을 만났던 순간을 떠올리며 “충무로에 새로운 바람을 가져올 배우라는 직감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연기력을 증명했지만, ‘국민 배우’라는 호칭이 오히려 부담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전했습니다.

배 감독은 “촬영 현장을 집처럼 여기며,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며 “한국을 대표한 연기자이자 성실한 배우의 표본이었다”고 고인을 기렸습니다.

유족을 대표해 장남 안다빈 씨도 인사말을 전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는 평생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는 것을 가장 경계하며 사셨다”며 “그 삶에 비해 우리가 드릴 수 있는 말이 이것뿐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버지는 아마 천국에서도 영화를 생각하며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장남은 다섯 살이던 시절, 고인이 직접 써준 편지를 읽으며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겸손하고 정직하며,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은 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라는 고인의 메시지가 전해지자 참석자들은 눈물을 훔쳤습니다.

영결식에 앞서 명동대성당 대성전에서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집전으로 장례 미사가 봉헌됐습니다.
정 대주교는 “안성기 사도요한 형제님은 겸손과 품격을 겸비한 참다운 스타였다”며 “한평생 영화에 봉사하며 국민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한 분”이라고 추모했습니다.

또한 고인이 교회의 다양한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나눔과 책임의 삶을 실천해왔던 점도 함께 언급됐습니다.
2005년 생명위원회 설립 당시 여론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생명홍보대사를 수락했던 일화를 전하며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안성기는 1957년, 다섯 살의 나이에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뒤 69년간 17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사의 중심을 지켰습니다.
아역 배우 시절부터 성인 배우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연기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수많은 거장 감독들의 페르소나로 활약했습니다.

〈바람불어 좋은 날〉, 〈만다라〉, 〈고래사냥〉, 〈하얀전쟁〉,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은 지금도 한국 영화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에도 〈실미도〉, 〈라디오스타〉, 〈부러진 화살〉 등 굵직한 작품을 통해 세대를 넘나드는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수십 차례의 국내외 영화제 수상, 모범적인 품행, 그리고 영화계 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까지 더해지며 그는 ‘국민 배우’라는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로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점 역시 고인의 또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안성기는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으며, 한 차례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이후 재발로 치료에 전념해왔습니다.
지난달 말 갑작스러운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뒤, 끝내 지난 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운구 행렬은 영결식 이후 장지인 양평 별그리다로 향했습니다.
명동성당을 떠나는 고인의 마지막 길에 시민과 동료들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성기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착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은 한국 영화와 함께 오래 남을 것입니다.